귀향(鬼鄕)

최소은(cy063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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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사진제공= ㈜와우픽쳐스)

영화 <귀향>이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람들이 귀향의 흥행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소규모의 영화가 관객들을 극장가로 이끌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귀향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사람들이 귀향을 관람하는 이유는 꼭 봐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 일 것이다.

귀향의 총 제작을 맡은 조정래 감독은 2002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통해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 그림을 보고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영화는 1943년 경남거창에 사는 정민(강하나)이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가면서 시작된다. 정민이 갖고 싶어 했던 괴불노리개를 밤새워 만들었던 어머니는 떠나는 정민의 손에 괴불노리개를 쥐어준다. 그러면서 이걸 갖고 있으면 절대 나쁜 일은 없을 거라고, 호랑이 굴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꼭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어디로 떠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십여 명의 소녀가 기차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고, 거기서 정민은 영희를 만난다.

한편 1991년 출소한 범죄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미쳐버린 은경(최리)과 은경의 어머니가 무당집을 찾는다. 은경의 어머니는 며칠만 데리고 있겠다는 무당의 말에 은경을 놓고 가버리고, 무당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영희(손숙)의 가게에 은경을 데리고 갔다가 거기서 은경이 괴불노리개를 발견하면서 죽은 정민의 영혼을 접신하게 된다. 즉, 1991년의 은경이 1954년 정민이 겪은 일들을 보게 되는 구조로 영화가 그려진다.

영화에서 일본 군인들은 열 넷, 열 여섯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들에게 무자비한 성적 고통을 안긴다. 조선인에게 동료가 죽임을 당하면 위안소를 찾아와 학대와 성폭행으로 위안부들을 무참히 짓밟았다.화장실 줄을 기다리듯 순서를 기다리는 군인들에게 위안부들은 그저 참았던 욕정을 풀기 위한 대상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소녀 1명이 하루에 약 20명의 성인 남성을 상대해야만 했으며 폭행을 동반한 성관계로 인해 온몸에 피멍이 들었고 생식기는 헐거나 찢어졌다.손님 받기를 거부한다거나 반항을 하면 즉시 끌려가 죽기 직전까지 맞았고, 도망치다 걸리거나 아프면 총이나 칼에 맞아 죽었다.

1991년, 은경을 통해 정민을 만나게 된 영희는 울면서 혼자만 고향에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정민은 괜찮다며 영희를 위로하고 편안히 눈을 감는다.정민의 영혼이 빠져 나간 후 정신을 차린 은경은 진혼굿을 하여 한이 맺힌 영혼들을 위로한다. 진혼굿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웃고 있는 일본 순사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것은 현재 사회에서도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어쩌면 위안부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과 일본 순사들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정민이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 가족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비현실적인 결말이지만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위안을 얻는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고향 땅으로, 가족의 품으로 데려가 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같아도 말 안하겠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말하러 오겠어. 쫌 그렇잖아…”  과거 위안부여성 피해 신고를 받는다는 뉴스를 접한 영희가 제보를 하러 갔을 때 공무원이 했던 대사 중 일부다. 그럴 때 영희처럼 “내가 그 미친년이다!” 외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영화는 위안부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1940년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었다. 제보를 하고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았던 그 시대, 위안부들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자신들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가슴속에 파묻어야만 했다.

영화를 보는내내~▲(사진제공= ㈜와우픽쳐스)

영화를 보는 내내 화가 끓어 올라왔다. 무자비한 일본 순사들의 모습에서 격분했고, 왜 그들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 까 억울했다. “여기가 지옥이다야” 말 그대로 그들의 삶 자체가 생 지옥이였다. 실제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은 영화보다 훨씬 더 참혹하지만, 영화에서는 다 담아내지 않았다고 한다. 일주일마다 위생검사를 받으러 가야했고 달걸이(생리) 중에도 손님을 받아야만 했다. 여성으로써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웠던 순간들, 죽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고향을 생각하며 살아야만 했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자신들의 이런 만행을 숨기기 위해 모조리 위안부들을 학살하려 했다. 많은 처녀들이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았고 불에 태워졌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에게 구해진 위안부들이 살아 돌아왔다.위안부로 끌려갔던 인원은 약 20만명, 그 중 돌아온 인원은 공식적으로 238명이다.비공식적으로는 238명 보다 많은 이들이 고국 땅을 밟았지만 그들이 과거의 아픔을 감춘 이유는 얻는 것 보단 잃는 것이 더 많았던 비참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조정래 감독은 수십년간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보상받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영화제작을 결심했다. 대부분의 출연진과 스텝들이 노개런티로 재능기부를 했고 7만여명의 시민들이 12억 가량의 제작비를 모았다. 하지만 14년이 걸려 힘들게 제작된 영화는 투자자들에게 외면을 당했고, 자국 국회의원에게 비난을 받았다.

나날이 영화산업이 발전하는 이 시대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제대로 된 영화가 왜 풍족한 제작비로 만들어 지지 못하고, 상영관 확보에 애를 먹는 것일까? 그 이유는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들이 현재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부가 만든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표현과 위안부들의 참상이 담긴 사진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는 성노예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감춘다 해서 숨긴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 있었던 사실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역사를 토대로 한 영화마저 상영되기 힘든 시대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디서 일제강점기 위안부들의 참혹한 실상을 배우게 될 것인가 진심으로 우려된다.

1▲ 강일출 할머니 작품 ‘태워지는 처녀들’, 김순덕 할머니 작품 ‘끌려가는 날’ (사진제공= 나눔의 집)

엔딩장면에서 나오는 할머니들의 그림은 아직도 그들이 완전히 치유 받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수년간 겪었던 온갖 고초를 어떻게 말로, 그림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까.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에게만 가던 환대와 국가적 차원의 혜택들,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을 위로 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제적, 정신적 보상을 받지 못한 그들이 일본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진정성 있는 사과다.하지만 일본은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마저 부인하려 한다. 위안부라는 암울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위안부 소녀상까지 철거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곁에는 46명의 증인들이 살고 있다. 또 역사적으로 많은 증거와 증언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가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비로소 지금에서야 사회적 외면 속에 살아왔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귀향을 통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어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시절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조국의 희생양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들의 괴불노리개가 되어 그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억해야만 한다. 꽃다운 나이에 끌려갔던 위안부들이 어느덧 평균연령 90세의 할머니가 되었다.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귀향이라는 영화로 인해 그 시간이 앞당겨지길 바란다.

 

 

2 댓글

  1.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호러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서 생각외로 많이 당황했으며 당황한 만큼 영화가 기어곡에 많이 남는 작품이였다.

  2.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 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호러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서 생각외로 당황했으며 당황한만큼 기억에 남았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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